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정호승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 종점이다 

아니다 


버스 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파일 날 

네가 술을 먹고 토하던 조계사 뒷골목이다 

아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서 있던 명동성당 입구다 

아니다 


나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던 너의 입술 위다 

그렇다 


누굴 사랑해본 것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던 

나의 입술 위다 

그렇다 


첫눈이왔습니다 

오늘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날처럼 설레고 또 설레었습니다.







첫눈

정호승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이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나는 네가 흘렸던 

분노의 눈물을 잊지 못하고 

너는 가장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길 떠나는 나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용서해야 할 일과 

증오해야 할 일을 위하여 

오늘도 기도하는 새의 

손등 위에 내린 너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오광수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플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 색이 남아있는 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께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 모으고

발자국 두길 쭉 내면서 쉽게 찾아오게 할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눈 속에

소망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이면 핸드폰의 통화량과 문자메시지 전송비율이 급증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첫눈 오는 날 보고 싶은 사람, 첫눈 오는 날 만나 사랑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첫눈 오는 날 만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첫눈처럼 마음이 맑고 깨끗한 그런 고운 친구가 저에게도 있어, 첫눈 오는 날은 늘 설레이기만 합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내린다. 

왠지 너랑 따뜻한 차한잔 나누고 싶어지는 날이야. 

너도 지금 이 눈 보고 있을까?

첫눈 내리는 날에는 너와의 첫만남을 생각하며 그 거리를 걷고 싶다. 

화려한 불빛 보며 널 만나고 싶다.




첫눈 「 홍수희 시모음 」


첫사랑도 저렇게 왔다

아마 내 기억으론 

깊이 잠들었다 

막 깨어난 이른 아침 

나도 몰래 변해버린 세상 

어제의 지붕도 

어제의 가로수도 

어제의 기억도 내겐 없었다

이미 내 세상을 덮어버린 

너의 그윽한 눈빛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몰래 쿵쿵 뛰었다

그러나 그 소리 은밀하여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으니 

금서(禁書)의 책장을 넘기듯이 

숨어서 너를 바라보았다

마주치면 소스라치는 내 영혼 

순결의 무늬가 너무 투명한 까닭에 

너의 이름 한 자(字)도 조심스레 

불러야 했다

첫눈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천사의 고운 날갯짓 

이 세상 티끌 한 점 다 지우고

첫사랑은 나에게 그렇게 왔다 

첫눈처럼 소리 없이 나를 덮었다.






달빛기도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 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 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 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 하세요 

 둥글게~



때로는 말보다도 한장의 사진이 더 감동을 줄때가 있습니다. 

용혜원님, 채수아님, 임성숙님의 예쁜 생일 축하시와 함께 생일 축하 이미지 사진들을 모았습니다.

 




당신이 축복받은 날 

용혜원



당신이 축복받은 날 

가난한 나에겐 드릴 것 없어 

초조합니다 


마음은 태산보다 더 높게 

당신께 보내고 싶습니다 

하오나 

당신의 사랑이 따스하기에 

울타리라도 치고 싶습니다. 

내 찬미함은 

당신께 주의 축복이 있기를 

이 빈 두손을 모으며 

먹구름 벗긴 

하얀 달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은 


홍조를 띤 모습에 

장미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막 피어오른 

꽃 한 송이를 가꾸기엔 

너무나 많은 당신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대의 나이만큼 붉은장미를 바칩니다 

용혜원


생일 축하합니다 

그대의 나이만큼 

붉은 장미를 바칩니다 


그대의 삶이 

오늘 밝히는 축하 케익의 불꽃처럼 

아름답기를 기도합니다 


그대의 삶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대의 꿈들이 

모두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대를 위하여 

축하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주님이 

그대를 인도하시고 

사랑하시기를 원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오늘 그대의 밝은 모습에 

언제나 행복의 꽃들로 

언제나 사랑의 열매로 

가득,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대의 나이만큼 

붉은 장미를 바칩니다 




생일 

채수아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풀과 꽃들이 축하해주었단다. 


아이야, 넌 알고 있니? 알고 있니? 

너 태어난 날, 지나던 바람도 숨죽이고 있었던 걸.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시냇물이며 푸른 산이 기도해주었단다. 


아이야, 넌 알고 있니? 알고 있니? 

너 태어난 날, 별님도 달님도 네 곁으로 내려왔던 걸 





사랑의 생일선물 

임성숙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 한마디 당신에게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미역국을 먹으며 

예쁘게 장식된 생일 케잌 자르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 한마디 당신께 드립니다 


그리고 더 귀중한 또 한마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당신은 사랑받은 만큼 

그보다 더 많이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당신이 태어나서 오늘까지 

또 영원히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 

그중에 당신을 섭섭하게 한 사람들까지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 한마디 진정 

당신께 드리는 생일 선물입니다 










부부

황성희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보이며

아니네 글자

평생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 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 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기왓장 내외

윤동주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사랑

장세정

 

밀린 월급 때문에

우리 아버지

술 한 잔 한 날.

 

어머니는

"뭔 돈으로 마셨노?"

핀잔을 줍니다.

 

큰 대자로 누운 아버지

양말 벗기고

바지 벗기고

 

"원수다 원수하면서

꿀물 타 주고

눈곱 떼 주고

 

아버지 발 주무르다

앉아서 조는

우리 어머니

 

원수를 사랑하십니다.

 

 

 

 

 

 

 

부부의 노래

정연복

 

 

나는 너의 반달 되고

너는 나의 반달 되어

우리는 하나의

동그란 보름달이 되자

 

 

혼자서는

외롭고 모자라지만

둘이 합하여

서로의 부족한 것 채워

밤하늘에 환히 웃음 짓는

보름달 되자

 

 

너와 나의 목숨

하현달 지나 그믐달로 야위고

마침내 그 목숨

스러지는 그 날까지

초승달에서 상현달로 부풀던

우리의 사랑 잠시도 잊지 말자

 

 

나는 너의

너는 나의

소중한 반쪽

영원히 같이하는 반쪽이 되자.

 

 

 

 


연리지

정연복

 

서로 다른 둘인 것이

하나 되었네

 

 

제각기 홀로는 외로워

둘이 하나 되었네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서로 꼭 껴안고

햇살 같이 받고

찬이슬도 더불어 맞으며

 

한 하늘 우러러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네

 

 

보는 이들의 마음

찡하게 하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랑이네

 

 

온몸 온 마음 모아

둘이 하나 된 애틋한 사랑

 

지상에서 꽃 피운

천상의 사랑이라네

 

 

 

 

 

 

 

 

행복한 부부

 

 

정연복 

 

 

아내와 손잡고 길을 걸으며

먼길도 가깝게 느껴진다면

 

 

아내와 마주앉아 밥을 먹으며

밥맛이 꿀맛이라면

 

 

아내와 차 한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 꽃이 핀다면

 

 

아내의 맘속 기쁨과 슬픔을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다면

 

 

아내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하루의 고단함이 잊혀진다면

 

 

아내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즐거운 추억이 하나 둘 쌓인다면

 

 

아내의 늙어 가는 모습도

변함없이 예쁘게 느껴진다면

 

 

두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다. 

 

 

어른이 되면

 

  서정홍 

 

 

"여보, 여기 앉아 보세요.

발톱 깎아 드릴 테니."

 

 

"아니, 만날 어깨 아프다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해요."

 

 

하루 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 아버지는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발톱을 깎아 주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줍니다

 

 

그 모습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빨리 장가들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면

어머니 같은 여자 만나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이사

김나영

 

이 남자다 싶어서

나 이 남자 안에 깃들어 살

방 한 칸만 있으면 됐지 싶어서

당신 안에 아내 되어 살았는데

이십 년 전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나 당신 밖에 있네

옛 맹세는 헌 런닝구처럼 바래어져 가고

사랑도 맹세도 뱀허물처럼 쏙 빠져나간 자리

25평도 아니야

32평도 아니야

사네

못 사네

내 마음의 공허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하네

 

 

 




모래위의 발자국 


어느날 밤 나는 한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해변가를 걷고 있었고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나의 삶의 장면들이 밝게 비쳐져 왔습니다


나는 각 장면마다 모래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내가 살아온 삶의 마지막 장면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한 사람의 것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나의 삶 중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실로 인해 

나는 늘 가슴 아파 했고

그래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주님은 항상 저와 동행하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제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왜 한사람의 발자국만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어찌하여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습니까?"


그러자 주님은 속삭이셨습니다


"나의 귀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거란다


네가 가장 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그 때에도

결단코 떠나지 않았단다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본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이란다"


- 마가렛 피쉬백 파워즈 -

Margaret Fishback Powers





비 오는 날의 일기

이해인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이해인 수녀님의 맑고 깨끗한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참 아름다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시를 읽고단비처럼 갈라지고 메마른 땅을 녹아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가수 마야가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도 유명한 '진달래꽃'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로 꼽히는 시로서, 1925년 발간된 김소월의 같은 이름의 시집 진달래꽃에 들어있는 이별의 슬픔을 한국 고유의 정서로 표현한 수미상관 형태로 이뤄진 서정시이다. 이름보다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시인 김소월은 본명은 김정식이며 호가 소월(素月)이다




봄과 같은 사람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여

나아가는 사람이다.


봄이 있기에 세상에 생명이 싹트듯이, 봄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그래도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지금 봄이 오는 길목에서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우리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들만 생기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나무처럼 

이해인

 

사랑도 나무처럼

사계절을 타는 것일까

 

물오른 설레임이

연두빛 새싹으로

가슴에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있고

 

태양을 머리에 인 잎새들이

마음껏 쏟아내는 언어들로

누구나 초록의 시인이 되는

눈부신 여름이 있고

 

열매 하나 얻기 위해

모두를 버리는 아픔으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충만의 가을이 있고

 

눈속에 발을 묻고

홀로서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인고의 겨울이 있네

 

사랑도 나무처럼

그런 것일까

 

다른 이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리움의 무게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오늘도 태연한 척 눈을 감는

나무여 사랑이여

 

봄 때문인지 제 마음도 덩달아 설레입니다. 봄의 정체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이 봄엔 얼었던 마음도 녹고 세상의 나쁜 일도 모두 녹고 기쁜 일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봄이 되면 땅은

이해인

 

깊숙히 숨겨 둔

온갖 보물

빨리 쏟아 놓고 싶어서

땅은 어쩔 줄 모른다

 

겨우내

잉태했던 씨앗들

어서 빨리 낳아 주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렵고 아픈

어머니 땅

 

봄이 되면 땅은

너무 바빠

마음 놓고 앓지도 못한다

너무 기뻐

아픔을 잊어버린다

 

코 속에 스미는 봄내음과 눈앞의 연두빛 축제들로 온몸으로 봄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곳곳마다 꽃들의 축제로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주변의 모든 일들도 멋지게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었으면 좋겟습니다.

 


봄 햇살 속으로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 본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다

 

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파릇파릇한 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봄이에요. 가슴속 얼어붙은 칙칙한 것들 나쁜 기억들은 모두 깨끗이 비워내세요. 그리고 이 봄 선선한 봄바람을 타고 좋은 기운과 행운이 당신에게로 날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