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

정호승 


첫눈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은 

너와 처음 만났던 도서관 숲길이다 

아니다 


네가 처음으로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주었던 

버스 종점이다 

아니다 


버스 종점 부근에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지 위의 까치집이다 

아니다 


네가 사는 다세대주택 뒷산 

민들레가 무더기로 피어나던 강아지 무덤 위다 

아니다 


지리산 노고단에 피었다 진 원추리의 이파리다 

아니다 


외로운 선인장의 가시 위다 

아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소년의 똥무더기 위다 

아니다 


초파일 날 

네가 술을 먹고 토하던 조계사 뒷골목이다 

아니다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서 있던 명동성당 입구다 

아니다 


나를 첫사랑이라고 말하던 너의 입술 위다 

그렇다 


누굴 사랑해본 것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하던 

나의 입술 위다 

그렇다 


첫눈이왔습니다 

오늘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나던 그날처럼 설레고 또 설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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