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김용택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희고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 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 속 

논두렁에 새하얀 억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와 그의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길섶에 

붉은 물봉숭아 꽃 고마리 꽃 그 꽃 속에 

피어 있는 서늘한 구절초 꽃 몇 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나타난 석양빛이라든가 


하얗게 저녁 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세 그치는 

한수 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요한 무덤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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